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닌그라드 공방전 (문단 편집) === 1942년 === 하지만 그 시점에서 소련군도 마찬가지로 포위망을 제대로 뚫지 못하고 있었다. 군기를 잡아놓았던 주코프는 티흐빈 탈환 직후 모스크바 방어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스탈린에 의해 모스크바 방어 사령관으로 발탁되어 다시 떠났고, 소련군 최고사령부는 1942년 1월 7일에 제2충격군과 제54군을 동원해 레닌그라드로 통하는 [[철도]] 요충지인 류반을 탈환하기 위한 작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공세는 너무 무리한 작전이었기에, 결국 제2충격군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고 사령관인 [[안드레이 블라소프]] [[중장]]은 독일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블라소프는 이후 독일로 압송되어 포로 생활을 했다. 포로 생활 중 친독파로 전향해 반공 성향의 [[러시아 해방군]]을 이끌었고 결국 전쟁 후반기에 소련군에게 잡혀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블라소프 본인은 자신의 전향 이유를 "제대로 준비 안된 병사들을 무리하게 작전에 밀어넣고 희생시키는 체제에 회의를 느꼈다."라고 설명한 적 있었다. || [[파일:external/img.hobbycom.jp/original_image.jpg|width=100%]] || || '''레닌그라드에서 노획해 모스크바로 가져온 극초기형 티거를 살펴보는 주코프와 보로실로프''' || 독일군이 몇 년 전부터 준비했던 [[티거 전차|유명한 신병기]]가 데뷔전을 치른 것도 이때쯤이었다. 알려진 명성과 달리, 의외로 이때 티거의 데뷔전은 신통찮았다. 투입된 네 대 모두 소련군의 화망에 결려 멈춰 버리고 그 중 세 대는 어찌저찌 회수했지만 하나(1중대 0소대 0호차)는 폭파 시도에도 불구하고 데뷔전에서 노획되어 샅샅이 조사당하는 수모를 겪었기 때문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레닌그라드 공방전/12.jpg]]}}} || 비슷한 시기에는 시 동남부에 있는 넵스키 퍄타초크(Не́вский пятачо́к)에서도 독일군 포위망을 와해시키기 위해 제48군과 제55군을 동원해 이듬해 5월까지 장기전에 들어갔지만, 독일군과 소련군 양군 사이에 엄청난 사상자만 남기고 끝났다. 하지만 이러한 전투와 더불어 [[겨울]]의 추위로 꽁꽁 언 라도가 호수를 통해 레닌그라드에 귀중한 식량을 비롯해 무기와 탄약 등의 보급 물자가 보내졌고, 이는 레닌그라드에 남아있던 사람들의 사기를 북돋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1월 16일에는 북부집단군 사령관 레프가 사임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35d7993678104ee328c6068d44-1024x756.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image_220.jpg|width=100%]]}}} || || 루델에게 공격받은 직후, 유폭 직전의 마라. || 유폭으로 박살난 마라. || 독일군도 소련군의 반격에 맞서 1942년 4월에 [[공군]]을 동원해 [[소련 해군]]의 발트 함대를 공격하는 아이스 슈토스(얼음 타격) 작전을 펼쳤지만 오히려 [[역관광]] 당했다. 만신창이가 되어 항구에 착저된 상태였음에도, 소련군의 [[강구트급 전함]] [[마라(전함)|마라]]와 [[10월 혁명]](옥차브리스카야 레볼류치야),[* 그야말로 전설로 남은 소련 최고의 수훈함이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 참조.] 그리고 팔라다급 방호순양함 [[오로라(순양함)|아브로라]],[* 러시아 혁명을 지원하고 [[에르미타주 박물관|겨울궁전]]을 포격한 것으로 유명한 순양함. 이 공적들을 인정받아 현재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박물관함으로 정박해 있다.] [[키로프급 순양함]] 키로프와 자매함 막심 고리키를 비롯한 많은 해군 함정들은 계속해서 12~6인치의 대구경포들을 독일군이 오는 족족 머리 위에 쏟아부었다. 이후 6월부터 9월까지는 독일군 포병들도 다시 시내에 맹렬한 포격을 가했다. 소련군이 라도가 호수를 통해 레닌그라드에 보급 물자를 계속 보내자 8월에는 독일군과 [[이탈리아군]], 핀란드군 연합으로 소함대를 조직해 라도가 호수의 보급선을 공격해왔고, 소련군도 이에 맞서 제8군과 재건된 제2타격군을 동원해 라도가 호수 남부에서 독일군을 공격하는 시냐비노 공세를 시작했다. 거의 2개월 가까이 계속된 이 공세도 역시 실패해 11만여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냈지만, 독일군이 핀란드군과 연합하기 위해 계획하고 있던 노르트리히트(북쪽의 빛) 작전을 무산시키는 전략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군의 포위망은 어느 정도 손상을 입었을지언정 여전히 견고하게 버티고 있었고, 소련군도 이를 뚫기 위해 계속 공세를 가했지만 큰 성과는 얻지 못한 채 소강 상태가 되었다. 독일군 포병들도 레닌그라드 시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파상적인 포격을 계속 가했지만, 시는 결코 항복하지 않고 계속 버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